2005년에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긴요비>에 기고한 글입니다.
5년전에 쓴 거지만 여전히 상황은 비슷한 듯 하네요.

=====================================

어제 필자는 서울의 대학로에서 연극 <라쇼몽>을 보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원작이며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로 유명해진 작품을 각색한 연극이다. ‘한일 우정의 해 2005’ 기념으로 한일 양국이 공동 주최한 행사 중 하나였다. 요즘 독도(일본 사람들이 칭하는 다케시마) 관련 뉴스를 보면 ‘한일 우정의 해’라기보다는 ‘한일 갈등의 해’가 된 듯 하지만, 아무튼 나는 양국의 외교부 덕분에 좋은 연극을 볼 수 있었다.

알다시피 라쇼몽 이야기는 거짓말에 관한 우화다. 가장 흥미있는 대목은, 서로 모순되는 3인의 증언이 최후 네 번째 증인인 나뭇꾼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는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최근 한일간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독도 문제를 떠올렸다.

한일 양국은 요즘 독도를 놓고 불화를 키우고 있다. 한국인들은 독도는 분명히 한국의 땅인데 일본 정부가 터무니도 없는 억지를 부린다고 믿는다. 일본인들도 아마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최근 후소샤가 발행한 공민교과서는 독도에 대해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향해 ‘불법 점거’라는 말을 쓰게 되면, 둘 중 하나는 진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 공세를 계속하는 한, 장차 백 년이 지나도 독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한국을 잘 안다는 일본인 기자와 독도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지도를 그리면서 독도를 일본 오키도 바로 옆에 붙여 표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독도가 울릉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섬으로 알아왔기 때문이다. 실제 지도를 보니 둘 다 틀려 있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거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서로 자기가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한 셈이다. <라쇼몽>식 지리학이다.

최근 필자는 독도에 관한 몇 몇 전문 서적(한국 학자와 일본 학자의 것 모두)을 읽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학자들이 전하고 있는 진실은 양국 국민들이 믿고 있는 상식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모두가 독도에 관해 <라쇼몽>의 등장인물들처럼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은 그 섬을 두고 일어났던 실제 역사와 얼마나 일치할까?

‘독도’와 ‘다케시마’는 그 이름부터가 한일 양국의 오해를 대변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고래부터 한국인들이 독도를 독도라고 불렀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섬에 독도(독도)라는 이름이 붙은 길어야 13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독도라는 이름은 한국 기록 문헌상에1906년에야 처음 등장한다. 학계에 따르면, 독도라는 이름은 19세기 후반, 울릉도에 전라도 사람들이 이주하면서부터 쓰였다. 전라도에서는 '돌'에 해당하는 발음을 '독'으로 읽어 이름붙이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한국인들은 독도의 한국 발음인 ‘Dok’ 이 ‘Dak-> ‘Dake’로 변해서 다케시마가 되었다는 주장을 곧잘 펴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과거에 독도를 칭하는 이름은 우산도였다. 하지만 중세 시대 한국의 우산도 표기 지도들은 그 위치나 이름에 있어 다소 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우산도는 울릉도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다케시마라는 일본식 이름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럽다. 다케시마는 원래 울릉도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일본 학자 川上建三씨에 따르면 “옛날 일본인들이 다케시마라고 불렀던 것은 울릉도이며, 또 마쓰시마(송도)라고 불렀던 것은 지금의 다케시마였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왜 근세에 와서 갑자기 일본인들은 두 섬의 이름을 바꿔 불렀을까? 1904년 오키도사 아즈마 후미스케가 시마네현에 보낸 공문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조선의 동방해상에 송죽 양도가 존재하는 것은 일반 구비로 전하는 것, 그래서 종래 당 지방에서 초경업자가 왕래하는 울릉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통칭하는 것도, 그 실제는 마쯔시마(송도)로, 해도에 의해도 요연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섬을 두고 달리 다케시마에 해당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문서를 바탕으로 시마네현은 1905년 그 섬을 다케시마로 칭하고 편입 고시를 했다. 착각에 따른 작명이었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이 다케시마의 존재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이런 착각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이렇게 섬의 이름을 두고 혼란을 거듭한 것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쪽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울릉도 거주 주민을 강제로 쇄환시키는 정책을 썼다. 일본 막부도 1696년 이후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출항을 막았다. 독도는 주로 울릉도로 떠나던 일본 어부들의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에, 울릉도로 떠날 일이 없어지자 독도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 19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 양국에 있어서 독도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미지의 섬이었다. 그러다 1백년이 지나자 양국은 마치 이 섬에 고래부터 민족의 혼이 담겨있었던 양 애정을 쏟고 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게 오해받은 섬이다.

필자는 독도에 대해 양비론이나 역사적 허무주의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라쇼몽’의 마지막 나뭇꾼의 증언이 그러하듯, 이 섬을 둘러싼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양국이 서로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만 하고 있다면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양국의 젊은이들이 국가주의를 뛰어넘어 코스모폴리탄 학자의 양심으로 독도를 놓고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양국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힘을 합쳐 한일 공동으로 독도 연구 보고서를 편찬할 수는 없을까?

Posted by . 신호철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_- 2010.03.13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쪽의견을 듣는다라.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지금 우리집 경계가 있고, 담이 없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집에선 할아버지 이전부터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옆집에서 경계선 끝쪽이 자기꺼라고 우깁니다.
    우리집은 말도 안돼는 얘기라서 무시하는데, 옆집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닙니다.
    저 경계쪽은 자기들 땅이라고.

    이게 양쪽 이야기를 서로 들어보고 해야 하고, 공동 연구를 해야 합니까?

  2. 신호철 기자 2010.03.15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하신 담이없는 집 비유 가운데,

    할아버지 이전부터 경계선 끝쪽이 우리집이라는 인식은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제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이웃집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고, 그 쪽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일말의 논쟁의 소지가 있다면, 같이 한번 할아버지대의 진실을 알아보자고 제안해볼 수 있겠지요.

  3. 독도사랑 2011.04.25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_- 님이 말도 안돼는 얘기라서 무시하고 있을동안,
    옆집은 그땅을 갖기 위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걸 아셔야 할 때입니다..
    한국인들이여~ 이제 더이상 감정적으로만 대처 할 때는 지났다고 생각 되어지지 않나요??
    대한민국의 현정부가 정권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을때, 일본정부는 어린이들에게 "독도는 일본땅이다.."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장차 그 어린아이들은 독도쟁취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현정부는 정권다툼은 그만하고 독도영유권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내란이 있을때 왜적이 침략하곤 했죠..일본이 또다시 무력으로 독도를 강제점령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