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47news.jp/CN/201003/CN2010030301000462.html

교도(共同)통신사의 홈페이지는 따로 없고, 위는 교도통신 기사를 받는 여러 언론사 중 한 곳.

네이버 일본어 자동번역기로 돌려본 번역문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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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고 거부에서도 베스트셀러 삼성 재벌 고발책 

[서울 공동]한국 최대의 재벌, 삼성 그룹의 전 간부가, 정계에의 부정 헌금 등 동그룹의 내막을 그린 고발책을 출판해, 동국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대기업 신문사가 연달아 광고 게재를 거부해,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일부에서 광고가 철거되었던 것이 반대로 인터넷으로 화제를 불러, 판매 부수는 발매로부터 1개월에 7만부에 이르렀다.

 이 책은, 삼성 그룹의 원법무 책임자, 김 이사무 쵸르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김 변호사는 2007년 11월, 약 2 천억원( 약 150억엔)의 부정 자금을 동그룹이 관리해, 정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때문에) 부정한 헌금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등이라고 증언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 증언으로부터 검찰당국은 08년 4월, 부정 자금 의혹으로 이 켄희회장(당시 )을 재택 기소.이씨의 회장 사임으로 연결되었다.

 동서는 금년 1월말에 발매.출판사측은 조선일보 등 대기업 신문 6지에 광고 게재를 의뢰했지만, 모두 거부되었다.

Posted by .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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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초의 인디언 2012.03.05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도 통신 홈페이지는 따로 존재합니다

    모르시군요
    ㅎㅎㅎㅎ


    현재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오히려 교도통신 홈페이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시군요

트위터에 보면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의 몇 구절을 텍스트로 옮겨서 블로그나 트위터에 쓰시는 분들이 있다.
그걸 한 자리에 모아보려고 한다. 물론 허락을 받아서, 출처를 밝히고

먼저 한사(@coldera)님 블로그
 
http://coldera.tistory.com/91 에 있는 글

군사정권 시절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다면, 이제는 ‘반기업적’이라는 낙인을 모두들 겁낸다. ‘반기업적’인 법률가라는 소문이 나면 우리사회 주류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마치 과거에 ‘용공 분자, 빨갱이, 월북자 가족’등의 낙인이 찍힌 사람이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한 것과 닮았다. p.390

삼성에서 회장 지시사항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내린 교시와 비슷한 위상을 갖고 있다.내가 삼성 구조본에서 일하던 시절, 구조본 팀장만 접속할 수 있는 비밀 파일이 있었다.여기에는 회장 지시사항에 대한 이행 실적, 예정 사항 등을 기재하도록 돼 있었다. 삼성에서 회장 지시사항은 헌법 이상의 권위가 있었고, 구조본 팀장들은 이행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 보고해야만 했다. p.41
실제로 청와대가 특검을 수용할 무렵, 청와대 관계자가 나를 찾았다. 그는 특별검사로 누가 적당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그러면서 그는 “정권을 물어뜯지 않을 사람”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관계자는 내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p.61

삼성은 이날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사장단 물갈이를 했다. 60대 이상 고령 경영자를 뒤로 물리고, 50대 신진을 경영일선에 배치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인사였으나, 실상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기초작업에 불과했다.삼성 사장단의 면면을 잘 아는 이라면 이번 인사를 보며 느꼈을 게다.윤종용, 이기태 등 조금 억세다 싶은 사람은 다 물러났다.대신 이건희 일가에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대거 발탁됐다.

또, 사상 최대 규모 물갈이 속에서도 삼성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승진했다.삼성 특검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차명 계좌 거래 사실이 확인돼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던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이 당시 인사에서 삼성정밀 화학 사장으로 복귀했다...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연루돼 기소된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은 삼성 토탈 사장이됐다. 삼성의 정보수집과 로비업무를 총괄했던 장충기 전 전략기획실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서 삼성 브랜드 관리위원장을 맡게 됐다.황백 제일 모직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때다. p.100


OJT를 받으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삼성전자 수원 공장의 가전 부문 조립 라인을 꼽고 싶다. 여성 생산직, 남성 생산직이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혹시 배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정도였다.또 복도는 전등이 희미하여 앞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화장실에서는 손 닦는 수건이 없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손수건으로 닦도록돼 이었다.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깨끗한 공장 풍경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북한에서 외부인이 구경하는 평양 거리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의 환경은 엉망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외부에는 ‘지상 천국’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싶기도했다. p.122


대한민국의 이익과 삼성의 이익, 그리고 이건희의 이익은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을 외면하는 자들은 삼성 바깥에도 많았다.그들에겐 삼성 임원 자리가 정부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벼슬’로 비치는 모양이었다.삼성이 공무원 로비 전용으로 쓰이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나와 골프를 쳤던 어느 검사는 나를 가리켜 “전관(轉官)했다”는 표현을 썼다.법원에거 검찰, 혹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길 때 썼던 표현이 ‘전관’이다.공직 사회 안에서 소속만 바뀔 때 쓰는 표현이다.그 검사에겐, 삼성 법무팀이 공직으로 보였나보다. p.132


삼성을 이해하려면 ‘실’을 알아야 한다. 이학수, 김인주 등 삼성 그룹의 실세 노릇을 했던 자들 역시 모두 ‘실’에서 근무했다.회장 비서실을 줄여서 ‘실’이라고 불렀는데,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실’이라는 이름은 게속 쓰였다.‘실’이라는 이름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던지 구조조정본부 시절에도 따로 회장실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이학수 부회장은 회장실장과 구조조정본부장을 겸직하여 ‘실장’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실’ 임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그들은 삼성 회장 비서실이 대통령 비서실을 능가한다고 믿었다.그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삼성 비서실을 흉내 내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실제로 삼성 내부 문서양식은 정부의 보고문서와 거의 같았다.내가 공무원을 하다가 삼성에 가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비서실, 또는 구조본 직원이 계열사에 전화하여 “여긴 ‘실’입니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계열사에서 무리한 지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때 책임을 면하려고 ‘실 지시에 의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공정위 등의 조사에서 자주 문제가 됐다.p.137


언론사 사장이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보고받자마자 기획팀으로 알려주는 일도 있었다.삼성 관련 첩보를 접한 검찰 고위 간부가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고 곧바로 전화해서 내용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p.138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로 바뀐 뒤, 공식적인 회의체로 구조조정위원회, 수요회, 팀장회의가 있었다...구조조정위원회는 비서실 시절에는 운영위원회라고 불렸는데 월 1회 열렸다.형식적으로는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했다...수요회는 사장단 회의인데 60여명의 그룹 사장들과 구조본의 팀장들이 삼성본관 28층 대회의실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 8시에 교양 강연과 공지 사항을 듣고 헤어지는 모임이다...별로 특별한 것을 논의하는 자리도 아닌데 고가의 첨단시설이 설치돼 있고 강사의 강연 내용만이 아니라 청중인 사장단의 반응까지 녹화되고 있어 졸리더라도 참아야했다.간혹 이학수 실장이 사장들에게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었다.하지만 “직장 생활 3년이면 침묵이 상책”이라는 것을 이미 열번 넘게 깨달은 사람들이라 그저 과묵할 뿐이었다.진대제 사장이 미리 준비한 듯한 발언을 가끔 했는데 역시나 그는 회사를 일찍 떠났다.

삼성에서 계열사 사장은 사실상 ‘얼굴마담’이다.삼성그룹은 60여개 개열사가 있고 각각 다른 법인체지만 ‘실’이 운영하는 사실상 하나의 회사라고 볼 수 있다.주요 결정은 모두 ‘실’에서 이루어졌다...한국이 월드컵 준결승전에 진출했을 때의 일도 좋은 예다.당시 삼성그룹 전체가 경기 중계방송 시청을 위해 오후 휴무를 했는데 그 결정 역시 ‘실’ 그러니까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이루어졌다.한나절 휴무 여부조차 계열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없는 구조였다...10~20억원 단위의 사원 복지 기금을 내는 것도 구조본 눈치를 봤다...실제로 삼성 사장단은 100억원 대의 투자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모든 투자 결정은 비서실에서 한다.계열사 사장을 임명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인사 역시 구조본에서 결정했다.삼성 전 계열사 임원의 인사 및 급여 결정은 구조본에서 이루어졌다.계열사의 재량권은 전혀 없었다.임원 인사를 위해 구조본은 전 계열사의 부장 직급(M2)을 관리했다.임원에 대해서는 인사파일이 따로 있었다.인사철이 되면 각 계열사 사장의 최고 현안이 자기 회사 임원 정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었다. p.140~143


형사 문제 등 책임을 져야할 문제가 있을 때는 ‘실’의 임직원 보호가 계열사의 사장 보호보다 우선시됐다...‘실’의 경비 사용은 그룹을 위한 것으로 여겨져서 신성불가침이었다.‘실’ 고위 임원이 비자금으로 연예인과 윤락행위를 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막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다.“관계자에는 돈을 주라”는 이건희의 지시와 달리 ‘실’ 임직원의 급여 수준은 늘 그룹 내에서 최고 수준이었다.‘실’ 임직원의 급여와 상여금 역시 ‘실’이 결정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p.144

구조본 공식 문서에 ‘이건희’, ‘회장’ 등의 표현을 직접 쓰는 경우는 없었다.이런 표현을 직접 쓰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이건희라는 말이 들어가야할 자리에는 대문자 ‘A'가 쓰였다.이건희의 부인인 홍라희가 들어가야할 자리에는 A자 옆에 작은 점을 찍은 ’A`'가 들어갔다.이건희 일가에 대해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은 ‘JY' 큰 딸인 이부진은 ’BJ' 작은 딸인 이서현은 ‘SH';라고 적곤 했다.봉건제 시절 중국에서는 공문서에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함부로 쓸수 없었다고 한다.그런데 이런 관행이 21세기 민주사회에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이다. p.145

그래서인지 이건희는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곤 했다.정부의 경제특구계획에 대해서 이건희가 사장단 회의에서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쩨쩨하게 너무 통이 작다”며 멸시하는 말을 한게 기억난다.“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이건희의 북경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실언이 아니고 소신 이라고 본다. p.146

아주 시시콜콜한 정부 방침까지 구조본 팀장 회의에 올라오곤 했다. 대표적인 게 ‘참여정부’라는 명칭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전 열린 팀장 회의에서 노무현 정부의 명칭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다. 당시 회의에서 ‘참여정부’가 좋겠다고 의논이 모아졌는데,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공식명칭이 됐다. 노무현 정부와 삼성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p.146

한때 LCD 사업의 전망이 좋다는 보고가 올라왔다.그러자 이재용이 LCD 사업을 자신의 경영실적으로 삼고 싶어했다.그래서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이재용을 S-LCD(삼성과 소니의 합작회사) 이사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안건이 올라오면 팀장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그저 ‘로열패밀리’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곤 했다. p.148

이건희는 종종 시시콜콜한 사항을 지시했다.이건희의 누이가 경영하는 웨스턴조선호텔의 입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서비스 정신이 뛰어나니, 스카우트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도 있다.당시 그 직원을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한채 사주고 데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그 여직원은 호텔 신라 여직원들을 상대로 특별한 서비스 교육을 했다. P.149

황당한 지시도 있었다. 삼성 냉장고의 월간 판매 실적이 LG에 뒤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건희는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원 쯤 에어컨이나 냉장고 등 냉공조 사업부에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줘서 LG가 망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p.150


이재용은 하루라도 빨리 경영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이런 조바심에 편승해서 나온 결과물이 ‘e삼성’이다...이 사업은 순식간에 망했다. 이 과정을 초기부터 정리단계 까지 주도한게 김인주 였다.다른 임원들은 관여할 여지조차 없었다...‘e삼성’의 실패가 갖는 의미는 컸다.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지원했지만 자동차 사업에서 실패했다.이어서 그룹차원의 지원을 한 사례가 ‘e삼성’인데 그것도 실패했다.‘자동차도 망하고 벤처도 망하는 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원래는 100억원만 날려도 책임을 져야하는데 김인주가 주도한 일이라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e삼성’의 핵심은 인터넷 사업인데, 이성주가 실무를 주도했다....이성주와 그가 이끄는 팀은 이번 기회에 이재용에게 인정박도 출세하겠다는 야심이 넘쳤다...이재용은 이성주 팀 소속 과장들과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술자리를 가지면서도 ‘e삼성’ 관련 회의에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재용의 이런 태도가 과장들의 도덕적 해이를 더 부추겼다. p.203

이건희 일가는 유럽 귀족 흉내를 몹시도 내고 싶어했다..이걸 굳이 규제할 근거는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개인적인 사치는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이들은 개인적인 파티에 회사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손님을 초대해 놓고, 손님에게는 주인보다 더 싼 음식을 제공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이런 무레한 태도의 배경에는 이건희 일가가 마치 왕족이나 귀족처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있다. p.225~230


이런 서류에 이건희의 결재란은 따로 없다.이건희이 결정은 도장이 아니라 말로 전달된다.이건희의 구두 지시를 받기 위해 이학수와 김인주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p.232




다수의 예상을 개고 이부진이 오빠 이재용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삼성 주요 계열사를 장악하게 되면 삼성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이부진의 경영능력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그래서 전망하는 게 쉽지 않다.이런 질문 앞에서 어떤 이들은 인천공항에 있는 호텔신라 면세점 사업을 예로 들기도한다.이부진이 진두지휘한 이 사업은 심한 적자를 보고 있다.면세점 입주 계약과정에서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를 제시한 게 한 원인이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외환위기로 출국객이 크게 감소했다... p.241

서울대 미대를 나온 홍라희는 패션 디자인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해마다 제일모직의 여성복 디자인도 홍라희가 직접 결정해 준다.자기 나름대로는 자상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제일모직 여성복 사업부장은 매출 부진으로 연말이면 항상 회사에서 쫓겨나곤 했다.홍라희의 패션감각은 보통사람들의 그것과 워낙 동떨어져 있는 까닭에 홍라희가 골라준 디자인에 따라 옷을 만들면 도무지 팔리지가 않았다.그렇다고 홍라희가 고른 디자인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제일모직 여성복 사업부장 자리는 제일모직 임원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p.244


이재용과 골프를 몇 번 친 적이있다.이재용은 골프를 무척 잘쳤다.허리가 안 좋아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사람이 어쩌면 그리 골프채를 잘 휘두르는 지 나는 늘 의아해하곤 했다.골프 관련 명품에 꽤 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이재용이 입은 골프복이나 신고 다니는 골프화는 나도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이건희, 이재용 부자가 입고 다니는 옷은 이런 경우가 많았다. p.244



이건희는 계열사 사장들에게 해외 명품 업체를 인수하라고 독려했다.인수한 명품 업체의 수가 실적에 반영됐기 때문에 사장들은 실사도 하지 않고 업체를 인수했다.‘묻지마 인수’ 경쟁이었다.SLR이 뭔지 모르는 사장이 명품 카메라 업체를 사겠다고 나섰다.이렇게 인수한 회사에서 그는 카메라가 왜 이리 무겁냐며 플라스틱 재질 카메라를 만들라고 했다...이미 한물 간 명품 업체를 인수한 경우도 있었다. 부실 덩어리 업체를 인수해서 두고두고 곤욕을 치른 경우는 흔했다.

독일의 명품 카메라 회사인 롤라이를 1000억원에 인수해서 100만원에 판 일이 있었다...일본의 공업용 현미경 제조업체인 유니온 광학을 인수햇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이 회사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일본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회사를 청산하는 수 밖에 없었다.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이회사에 이재용의 돈이 10억원 가량 투자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재용의 돈을 날릴 수 있다”는 보고를 할 수 있는 ‘간 큰 간부’가 당시 삼성에는 없었다.그래서 회사를 청산하지 못했다...결국 어느 싱가포르 회사에 헐값에 넘겼다. p.250


명품에 대한 이건희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사업은 흔했다.특히 기업에 남는게 삼성이 개발한 하이엔드 오디오 ‘엠퍼러’다....1997년 출시된 엠퍼러 스피커 가운데 염가형 제품 가격이 1000만원대엿다.무게는 100kg이었다...결국 시장에서 실패한 엠퍼러 시리즈는 삼성 임직원들이 사들여야했다. p.251

이건희와 그 주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세계를 잘 몰랐다.이건희는 그게 경영자로서 약점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뿐이었다.이런 약점을 굳이 보완하려는 의지는 없었다.핏줄이 다른 귀족이라고 여기고 있던 그들은 보통사람들의 정서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p.252

제일모직을 운영하는 이건희의 둘째 딸 이서현은 “100만원 짜리 옷을 만들어봤자 누가 입겠느냐”는 말을 한 적이있다.100만원 짜리 옷이 너무 비싸서 안 팔릴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그 반대다.너무 싸구려 옷이라서, 사람들이 입고 다니기 창피해 하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p.252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해 이재용은 안타까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없었다.자신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그날 그는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는 모든 기업이 공공연하게 갖고 있는 것인데 왜 삼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짜증스러워 했다. p.253

삼성에서 자동차 사업 다음으로 큰 투자 손실은 미국의 망해가는 컴퓨터 회사 AST를 인수해서 1년만에 1조3000억원을 날린일이다.인수하고 보니 유럽 등에서 판매한 AST의 노트북 등에 대한 무상 서비스 비용을 게산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p.266


삼성항공에서 헬리콥터 제조업을 한 적이 있다.이건희의 지시 때문이었다.이건희가 “내 친구들한테만 팔아도 상당히 팔겠다‘고 하면서 만들라고 했다는 게다....당시 만들고 있는 게 단발엔진 헬리콥터였는데 영하 십도만 내려가도 엔진이 서버렸다.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려면 15년쯤 걸릴 거라고 했다.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회장의 지시 때문에 억지로 사업을 끌고가는 형편이었다.결국 사업을 중단 시켰다.마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들어진다기에 거기에 팔아 넘겼다. p.267


여기서부터는 춘천MBC 박대용 기자가 타이핑한 글입니다.

박대용 기자 트위터는 @biguse 입니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병역을 기피하는 보수세력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몸부림일 뿐 진정한 보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은 내게 쥐어준 돈으로 사법부를 길들이길 원했다...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아낸 검사였던 나를 뽑아서 굳이 비자금 소굴에 배치한 것도 그들이었다"-

"검사시절 나는 유흥업주에게 10만원을 받은 경찰을 해직시켰다. 이랬던 내가 수백만원 뇌물을 받은 검사를 고발하지 않는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다"-

"사제단은 '뇌물'을 '떡값'이라고 부르면서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게 우리 현실이라고 밝혔다. 부패에 둔감해진 세태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대통령은 왜 삼성 돈받은 사람만 좋아하나... 삼성 돈 받은 공직자가 중용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들어 더 심했다"-

"정권을 건드리지않고 삼성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피를 흘리지않고 살만 베어내겠다는 것과 같다." 

"노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검찰은 삼성이 노무현 정부 관계자에게 건넨 돈은 수사하지 않았다. 박연차 강금원 등 소규모 기업인이 건넨 돈만 파헤쳤을 뿐이다"-

"아무리 강단있는 검사라도 인사 문제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은 이런 약점을 이용해 공무원 사회를 장악했다. 인사권을 쥔 수뇌부에 집중로비를 퍼부은 것이다."-

"삼성돈을 받은 게 검찰만이 아닌데 내가 진술한 명단은 주로 검찰이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명단이 대부분 법조계 인사들인걸 어쩌란 말인가. 정치 행정 언론 관리는 내 담당이 아니었다"

"특검팀에서 나를 조사했던 검사는 그동안 공개된 떡값 검사 명단을 내가 부정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내게 '그들은 어디까지 성장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특검수사를 통해 해명되야한다.'고 말했다."- 

"삼성화재는 고객에게 지급하기로 했으나 합의 등의 이유로 지급하지 않은 미지급 보험금, 고객이 잘찾아가지 않는 렌터카 비용 등 소액의 돈을 모아 차명계좌에 빼돌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왔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이 발표한 경영쇄신안에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을 실명전환 후 좋은 일에 쓰기로 약속돼 있다. 그런데 이회장의 실명전환 주식가액은 삼성특검이 밝힌 차명재산 총액에서 최대 6천억이 모자란다."-

"일부 언론의 왜곡과 많은 지식인의 침묵과 냉소는 용기있는 증언자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경제라는 이름의 물신을 위해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오늘의 국민정서 또한 공범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당시 민병훈 재판부는 계산오류를 저지른 결과 배임 규모를 50억원보다 낮춰 잡아서 이건희 등에게 특경가법이 적용되는 것을 막았다. 그래서 이건희 등에게 면소판결이 내려질수 있었다."-


"민병훈 판사에게 삼성사건을 배당했던 허만 판사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높은 처벌이 가해지도록 유도하기위해 특정판사에게 사건을 몰아줬다는 지적받았다. 당시 서울지법원장은 신영철 현 대법관""

"삼성이 특검과 법원으로부터 얻은 것은 단순한 면죄부가 아니었다. 그동안 차명으로 숨겨뒀던 수조원대 자금을 공식적인 재산으로 인정받았다. 또 불법으로 얼룩진 경영권 승계문제도 깨끗해졌다."-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가 무기한 안식년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교구청은 전 신부에게 해외교포 사목을 위해 미국 LA로 가라고 종용.. 하지만 전 신부는 이를 거절하고 무기한 안식년 선택"-

"2심 재판부는 에버랜드CB헐값발행, 삼성SDS BW헐값발행까지 모두 무죄판결..이 재판때문에 세금없이 기업 경영권을 넘기는 일, 무세승계가 합법화 됐다"-


"대중의 낮은 관심이 학자들의 침묵까지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관심을 가진 이들의 수는 적지만 의미있는 일에대해 연구하고 발언하는게 학자와 전문가의 역할이다"-


"윤종용,황창규 등 삼성을 대표하는 간판급 경영자들이 쫓겨났지만 비리연루자로 언론에 보도된 이들은 살아남았다.심지어 고객돈으로 비자금 조성한 삼성화재 사장에게는 막대한 스톡옵션 보장"-


"사장단회의에서 삼성비리에 관한 검찰 수사가 안건으로 올라오면 사장들이 일제히 충성맹세한다. 자신들이 회장을 대신해 감옥 가겠다는 것이다. 범죄영화의 한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박연차 게이트와 삼성비리는 본질상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박연차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이건희는 실형을 피했다. 같은 죄라도 더 큰 규모로 저지르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박연차 수사와 삼성 수사는 하늘과 땅처럼 달랐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은 철저히 박연차 진술에만 의존했다. 반면 삼성 비리수사에서 특검은 내 진술을 외면했다. 오히려 내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나와사제단은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에서 돈 받은 이들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에서는 박연차가 돈 줬다고 지목하기만 하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삼성비리 수사 특검은 해외비자금은 수사할 수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은 박연차가 관리한 해외비자금을 잘만 찾아냈다."-

"천신일은 이명박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중략) 이건희가 대한레슬링협회 명예회장을 맡고 천신일이 회장직을 물려받은 97년 3월 박연차는 이 단체 부회장이 됐다 이건희-천신일-박연차 구도가 짜여진거다."-

"KBS는 삼성에버랜드 CB헐값 발행사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취지로 결론내렸다고 선고되지 않은 판결 내용을 미리 보도했다. 방송이 이미 내용을 공개한 판결을 내놓으며 대법관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삼성으로부터 주기적으로 돈을 받았던 공직자들은 아무도 조사받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출세를 거듭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사제단 신부들에게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만이 중요한 문제다. 이기고 지고는 이분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이분들은 종종 우리는 지는 싸움만 한다고 말한다. 승리하는 불의보다 패배하는 정의를 택하는게 이분들이다."-

"부장검사라는 자리가 썩을 부, 내장 장 같았다. 후배검사들이 수사를 제대로 하도록 독려하는 자리가 아니라 윗사람의 뜻을 받들어 후배들의 수사를 막는 자리처럼 여겨졌다."-

"검사는 시시한 혐의로 사람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검사와 친한 변호사가 사건을 맡도록 한다. 변호사는 두둑한 수임료를 챙긴다. 검사, 변호사와 친한 판사는 피의자를 풀어준다. 한 몫 챙긴 변호사는 술자리에서 판검사에게 대접한다"-

"김인주는 내게 '회사에서 가장 필요한 권력기관이 검찰과 국세청인데, 그중 하나인 검찰의 사정에 네가 정통하니 이를 활용하면 회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말했었다. 당시 그는 내게 '대 검찰 로비스트'로.."-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삼성 임원들의 허위 진술에 속아서 정경식(이건희에게 이학수 비방편지쓴 과장)을 구속시켰다. 그 검사는 뒷날 삼성 법무실에 임원으로 취직했다. 그런데 법원이 정경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과 구조본 팀장들 중에는 자신들이 실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김인주가 그랬다. 그는 '시시한 벼슬도 다 족보에 남기는데 삼성사장 벼슬은 왜 족보에 못남기냐는 말을 자주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한미 FTA를 추진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영입. 공직자 윤리법 저촉...삼성도 정부도 개의치 않아...그는 '기업 이익을 지키는 것이 나라 이익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삼성 공장 관할 관청 공무원을 매수해서 노조설립신고서를 아예 수리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매수된 공무원은 신고서가 들어오면, 신고서 수리를 일단 미루고 바로 삼성에 알려줬다."-

"삼성 구조본 인사팀에는 경찰대 출신이 있었다. 누군가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야한다면..경찰서장 명의로 통신회사에 공문을 보내면, 휴대폰 개설 명의자를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삼성이 치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 때문에 생기는 비용보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 정책 가운데 삼성에 불리한 것은 거의 없었다. 대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제안한 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채택한 사례는 아주 흔했다. 심지어 삼성경제연구소는 아예 정부부처별 목표와 과제를 정해주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정연주씨가 KBS 사장이 됐을 때도 구조본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MBC는 노조가 강해서 문제고, KBS는 사장이 문제'라는 말이 종종 나왔다. 이것이 기업 경영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한겨레가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계속 싣는다는 이유로 광고 중단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건희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순동 당시 홍보팀장이 한겨레와 대화 통로를 끊지 않으려면 계속 광고를 줘야한다고해서 가까스로 넘어간일이 있다."-

"삼성 냉장고의 월간 판매실적이 LG에 뒤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건희는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원쯤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에어콘, 냉장고 공짜로 줘서 LG 망하도록 지시도 했다.실현안됐다."-

"베네수엘라에서...재판이 시작됐는데.. 판사가 수시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우리편 판사입니다.' '상대편 판사로 바뀌었습니다' 등과 같은 보고가 계속 올라왔다. 결국 재판에서 졌고, 우리돈 천억원 물어주라는 판결.."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구조다. 이건희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도입한 편법이다."-

"김인주는 돈 받는 것을 즐겼다. 돈을 받으면서 '그게 자기 돈인가, 회사 돈이지' 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자기 월급을 헐어서 구조본에 접대를 하는 계열사 임원은 없다."-

"삼성구조본 감사팀의 감사기법은 수사정보기관을 능가한다. 이를테면 감사 대상자가 지방 어느 호텔에서 신용카드로 숙박대금을 결제하면 동시에 그의 위치와 결제 내역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삼성 임직원들 삼성카드를 가능한 안쓴다."-
"삼성에서 감시와 도청은 일상 업무였다. 삼성 임직원들이 주고 받는 이메일은 모두 감시를 받는다. 공식적으로 일정 용량 이상의 메일만 확인한다지만, 이를 믿는 직원은 없었다."


"삼성이 관계사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그 회사가 그걸 잡아내는지를 검사한 적이 있다. 이런 일을 하다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국정원에서 운용하는 도청장치에 자꾸 이상 전파가 잡힌다는 것이다."-

"삼성은 직원에게 무한한 도덕성을 강요한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면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3만원짜리 신용카드 전표가 문제가 돼 해직된 직원의 눈에 10조원대 회사돈을 빼돌린 이건희 일가가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회사 인사와 관련해 검사들이 청탁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삼성전기 구매부장이 납품비리를 저지른 일이 있었다. 선배 검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처남을 삼성 일본 본사 구매부서로 보내달라고 했다. 황당했다."-

Posted by .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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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긴요비>에 기고한 글입니다.
5년전에 쓴 거지만 여전히 상황은 비슷한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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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필자는 서울의 대학로에서 연극 <라쇼몽>을 보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원작이며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로 유명해진 작품을 각색한 연극이다. ‘한일 우정의 해 2005’ 기념으로 한일 양국이 공동 주최한 행사 중 하나였다. 요즘 독도(일본 사람들이 칭하는 다케시마) 관련 뉴스를 보면 ‘한일 우정의 해’라기보다는 ‘한일 갈등의 해’가 된 듯 하지만, 아무튼 나는 양국의 외교부 덕분에 좋은 연극을 볼 수 있었다.

알다시피 라쇼몽 이야기는 거짓말에 관한 우화다. 가장 흥미있는 대목은, 서로 모순되는 3인의 증언이 최후 네 번째 증인인 나뭇꾼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는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최근 한일간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독도 문제를 떠올렸다.

한일 양국은 요즘 독도를 놓고 불화를 키우고 있다. 한국인들은 독도는 분명히 한국의 땅인데 일본 정부가 터무니도 없는 억지를 부린다고 믿는다. 일본인들도 아마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최근 후소샤가 발행한 공민교과서는 독도에 대해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향해 ‘불법 점거’라는 말을 쓰게 되면, 둘 중 하나는 진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 공세를 계속하는 한, 장차 백 년이 지나도 독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한국을 잘 안다는 일본인 기자와 독도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지도를 그리면서 독도를 일본 오키도 바로 옆에 붙여 표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독도가 울릉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섬으로 알아왔기 때문이다. 실제 지도를 보니 둘 다 틀려 있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거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서로 자기가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한 셈이다. <라쇼몽>식 지리학이다.

최근 필자는 독도에 관한 몇 몇 전문 서적(한국 학자와 일본 학자의 것 모두)을 읽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학자들이 전하고 있는 진실은 양국 국민들이 믿고 있는 상식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모두가 독도에 관해 <라쇼몽>의 등장인물들처럼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은 그 섬을 두고 일어났던 실제 역사와 얼마나 일치할까?

‘독도’와 ‘다케시마’는 그 이름부터가 한일 양국의 오해를 대변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고래부터 한국인들이 독도를 독도라고 불렀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섬에 독도(독도)라는 이름이 붙은 길어야 13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독도라는 이름은 한국 기록 문헌상에1906년에야 처음 등장한다. 학계에 따르면, 독도라는 이름은 19세기 후반, 울릉도에 전라도 사람들이 이주하면서부터 쓰였다. 전라도에서는 '돌'에 해당하는 발음을 '독'으로 읽어 이름붙이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한국인들은 독도의 한국 발음인 ‘Dok’ 이 ‘Dak-> ‘Dake’로 변해서 다케시마가 되었다는 주장을 곧잘 펴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과거에 독도를 칭하는 이름은 우산도였다. 하지만 중세 시대 한국의 우산도 표기 지도들은 그 위치나 이름에 있어 다소 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우산도는 울릉도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다케시마라는 일본식 이름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럽다. 다케시마는 원래 울릉도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일본 학자 川上建三씨에 따르면 “옛날 일본인들이 다케시마라고 불렀던 것은 울릉도이며, 또 마쓰시마(송도)라고 불렀던 것은 지금의 다케시마였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왜 근세에 와서 갑자기 일본인들은 두 섬의 이름을 바꿔 불렀을까? 1904년 오키도사 아즈마 후미스케가 시마네현에 보낸 공문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조선의 동방해상에 송죽 양도가 존재하는 것은 일반 구비로 전하는 것, 그래서 종래 당 지방에서 초경업자가 왕래하는 울릉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통칭하는 것도, 그 실제는 마쯔시마(송도)로, 해도에 의해도 요연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섬을 두고 달리 다케시마에 해당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문서를 바탕으로 시마네현은 1905년 그 섬을 다케시마로 칭하고 편입 고시를 했다. 착각에 따른 작명이었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이 다케시마의 존재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이런 착각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이렇게 섬의 이름을 두고 혼란을 거듭한 것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쪽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울릉도 거주 주민을 강제로 쇄환시키는 정책을 썼다. 일본 막부도 1696년 이후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출항을 막았다. 독도는 주로 울릉도로 떠나던 일본 어부들의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에, 울릉도로 떠날 일이 없어지자 독도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 19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 양국에 있어서 독도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미지의 섬이었다. 그러다 1백년이 지나자 양국은 마치 이 섬에 고래부터 민족의 혼이 담겨있었던 양 애정을 쏟고 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게 오해받은 섬이다.

필자는 독도에 대해 양비론이나 역사적 허무주의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라쇼몽’의 마지막 나뭇꾼의 증언이 그러하듯, 이 섬을 둘러싼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양국이 서로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만 하고 있다면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양국의 젊은이들이 국가주의를 뛰어넘어 코스모폴리탄 학자의 양심으로 독도를 놓고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양국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힘을 합쳐 한일 공동으로 독도 연구 보고서를 편찬할 수는 없을까?

Posted by .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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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_- 2010.03.13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쪽의견을 듣는다라.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지금 우리집 경계가 있고, 담이 없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집에선 할아버지 이전부터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옆집에서 경계선 끝쪽이 자기꺼라고 우깁니다.
    우리집은 말도 안돼는 얘기라서 무시하는데, 옆집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닙니다.
    저 경계쪽은 자기들 땅이라고.

    이게 양쪽 이야기를 서로 들어보고 해야 하고, 공동 연구를 해야 합니까?

  2. 신호철 기자 2010.03.15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하신 담이없는 집 비유 가운데,

    할아버지 이전부터 경계선 끝쪽이 우리집이라는 인식은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제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이웃집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고, 그 쪽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일말의 논쟁의 소지가 있다면, 같이 한번 할아버지대의 진실을 알아보자고 제안해볼 수 있겠지요.

  3. 독도사랑 2011.04.25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_- 님이 말도 안돼는 얘기라서 무시하고 있을동안,
    옆집은 그땅을 갖기 위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걸 아셔야 할 때입니다..
    한국인들이여~ 이제 더이상 감정적으로만 대처 할 때는 지났다고 생각 되어지지 않나요??
    대한민국의 현정부가 정권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을때, 일본정부는 어린이들에게 "독도는 일본땅이다.."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장차 그 어린아이들은 독도쟁취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현정부는 정권다툼은 그만하고 독도영유권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내란이 있을때 왜적이 침략하곤 했죠..일본이 또다시 무력으로 독도를 강제점령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군요..